신 고지라 감상 영화 - 감상

<신 고지라>는 아마도 내가 올해 본/볼 영화들 중 최고의 명작으로 기록될 것 같다. 예전부터 철저하게 캐릭터를 축소하고 시스템 차원에서 재난/전쟁 등에 대응하는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이를 충족해 주었으니. 물론 이 영화에도 주인공이라 불릴 수 있는 캐릭터는 존재한다. 그러나 개인의 퍼스널리티를 철저히 억제하고, 이상적이며 또 모범적인 정치인(혹은 국가기관)을 상징할 뿐이다. 물론 이전에도 캐릭터 단위 외에도 시스템적인 면에 접근한 작품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들에 비해 <신 고지라>는 상당히 유니크한 특징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몇몇 작품들과 비교해서 접근하는 것도 재밌으리라 여겨 이 글을 쓴다. 나는 고지라 시리즈의 이전작들을 본 적이 없으며, 안노 히데아키의 전작은 10년도 더 전에 에반게리온 몇편 본게 전부임을 미리 밝힌다.

1) 도라 도라 도라(1970)
주인공의 퍼스널리티 억제 라는 점에서는 <신 고지라>보다 훨씬 극단적인데, 이 영화는 통상의 극 영화보다는 역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신 고지라>에서는 제도가 주인공이라면 <도라 도라 도라>에서는 역사 자체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도라 도라 도라>는 극도로 건조하게 진주만 공습이 어떤 과정을 따라 이루어졌는지 "설명"만 할 뿐이다. 관객은 이 자체로서는 교과서 읽듯이 접근할 뿐이다. 하지만 <신 고지라>는 관객, 특히 일본인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메세지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가의 국민들은 저마다의 민족적 트라우마가 있는데, 일본인에게는 핵이 그것이 아니겠는가. 스포일러때문에 길게 설명은 안하겠다만(3에서 설명한다), 영화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상정하여 후쿠시마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고 생각한다.

2) 더티 해리: 이것이 법이다(1973) / 시카리오(2015)
캐릭터의 퍼스널리티도 굉장히 강하지만 시스템적 측면에 접근하기에 써 본다. 이 두 영화는 주로 법리적 면에 촛점을 맞추는데, 공통적으로는 법 제도가 이상적 선과 충돌하는 경우를 다룬다. 세부적으로는 전자의 경우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악용하는 문제에 대해, 후자는 법치주의가 형식적으로만 적용되는 문제가 들어간다. <신 고지라>와는 당연히 차이가 굉장히 나는 게, 이 영화는 제도의 명암을 대놓고 까발리지는 않는다. 형식적인 관료제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다루지만, 시스템에 대해서는 감독의 가치판단을 최소화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즉 사회비판적 요소는 굉장히 적다는 의미. 극중 총리를 비롯한 정부관료들의 얼뜨기 같은 행태에 관객들은 개탄하겠지만, 세상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 고도로 정제화한 매뉴얼에 의거해 운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더티 해리2의 원래 부제는 Magnum force인데, 국내에서는 "이것이 법이다"라는 굉장히 쌈마이한 어구로 바꿔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원제를 초월해 본작의 핵심을 꿰뚫는 번역이라 생각한다.





/******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존재




3) 아이 인 더 스카이(2015)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비해 시스템적인 측면은 가장 적은 편이다. 미-영 연합군 수뇌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기는 한다. 여기서는 현실의 정치-외교적 딜레마를 다루는데, 드론을 이용해 테러범을 제거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나 민간인이 죽는다라는 문제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 - 열차 노선을 바꿔 1명을 죽일것인가 5명을 죽일것인가 - 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다. 테러범을 민간인과 함께 드론으로 제거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권에 대항하는 집단에 좋은 프로파간다를 안겨줄 수 있다. 만약에 테러범을 놔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겠지만 지하디스트에 대항한 전 인류적 분노를 형성할 수 있다. <신 고지라> 역시 전 인류를 위해 도쿄의 고지라에 핵공격을 하여 일본을 희생양으로 삼느냐의 딜레마를 다룬다. <신 고지라>가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는 흥행하지 못했다는데,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대목이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테러와의 전쟁은 전 세계적 현상이며 매일같이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때문에 국가를 막론하고 깊이의 차이는 있으나 영화의 내용에 대해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 가능하다. 그러나 도쿄에 대한 핵투하는 전혀 무게감이 다르다. 우리 한국인에겐 조국의 해방을 가져다준 고마운 무기지만 핵은 폭탄이든 원전재해든 일본인들에게 그야말로 민족적 트라우마다. 그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서 일본인들이 자신의 지혜와 시스템으로 고지라를 무력화하고, 외국군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게 일본인들에게 큰 감동과 치유를 선사해주지 않았나 싶다. 한국인인 내가 <신 고지라>가 일본인들에게 주는 감정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으로 진정 이해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스포일러 끝 ******/





평소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했기에, 그 성향이 영화와 같은 감상형 컨텐츠 취향에도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이 메세지가 전달될 리는 없겠지만, 이 블로그를 빌어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원자력 재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지구에 대한 범죄이다. 아직도 후쿠시마의 방사성물질이 태평양으로 유출되고 있다는데, 영화와 같이 지혜와 시스템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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