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2017) 감상(스포일러) 영화 - 감상

--퇴고중

원작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고, 순전히 영화로만 평함


이 영화는 공식 포스터부터 최명길, 김상헌 둘만 등장하는 것, 인조까지 등장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핵심 인물은 이 셋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기록"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로 전쟁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갔는지가 영화의 내용이며 굉장히 암울하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실제로 극장에서 내가 본 영화는 병자호란 시대와 남한산성 공간이라는 배경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인조)이라는 두(세) 인물이 어떤 행적을 했는지를 다룬다. 문제는 그 셋에 추가되는 인물들이다.

이 영화만의 매력으로 크게 두 개를 들겠다. 

첫째로는 전쟁영화의 포맷이긴 한데 말로 하는 액션 위주라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대화 씬은 대개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지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세자를 보낼까/말까? 기습을 할까/말까? 항복할까/말까? 논쟁 하나하나가 나라의 운명을 가를 굉장히 심각한 내용인데다 잊을만 하면 꼭 한번씩 해 주므로,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큰 줄기를 잡게 해 준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 긴장감 조성도 잘 했다고 본다. 이 점에 매력이 있는데, 핵심 등장인물이 미천한 아랫것들이 아니라 포스터대로 왕, 고위 관료 위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전쟁영화판에서 좀 유니크한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전쟁영화 베이스의 사극들은 주인공이 쫄따구 신분이기에 저런 장면이 드물다. 주인공이 높으신 분이라면... 그래도 드물지 않나? 내가 <아이 인 더 스카이>에서 느꼈던 매력을 "약간"느낄 수 있어 좋았다.

둘째로는 학교에서 주입된 척화파 개XX론을 (비록 허구를 동원했으나)일부 씻어냈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이기는건 불가능했다는 걸 안다. 분전하면 청의 코피는 터트릴 수 있겠지만 조선은 강냉이를 모조리 털렸을거다. 때문에 우리는 전쟁 준비도 안해놓고 청에 나라를 짓밟히게 만든 척화파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영화의 김상헌은 강냉이를 덜 털리고 코피를 쌍코피로 만들기 위해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사실 척화파에게도 할 말은 있는게, 주화파 말대로 항복한다 해도 목숨을 건지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지 않은가? 삼배 뭐시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삼백토막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결론적으로, 김상헌이란 반전매력 캐릭터를 통해 역사에 대한 시각을 자극하는 재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두 개의 좋은 특징을 100%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논쟁 씬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건 관객이 Y/N중 어느 선택으로 이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건 사극이라는 것이며 한국의 관객들은 각 논쟁들이 어떤 결론을 낼 지 대강은 알고 있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 셋은 역사상으로나, 영화상에서나 패배자로 마무리되니 격렬한 논쟁 끝에 남는건 체념 뿐이다. 이러니 김이 팍 샌다. 게다가 논쟁은 높으신 것들의 전유물인데 대장장이를 비롯한 아랫것들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포스터, 티져, 캐치프레이즈가 외치는 이 영화의 핵심주제는 "김상헌-최명길-인조 이 셋을 중심으로 남한산성이 어떻게 되었는지"다. 영화는 앞서 말한 아랫것들의 존재감 뿐 아니라 핵심 주인공인 김상헌부터 영화에 충실히 복무하지 않는다.

-----------------스포일러!-----------------

엘리트 캐릭터 김상헌은 엔딩에서 민중을 위한 인물로 돌변해버린다. 영화는 이를 관객에게 이해시킬 근거로 권력층의 무뇌아 짓과 피해입는 민중 씬을 왕창 집어넣는데, 이 중 영화의 핵심 줄기인 "김-최의 갈등과 인조의 븅신짓"에 복무하지 못하는 씬들이 대거 생성되어 버렸다. 서날쇠의 간언대로 가마니를 배급하고 무기를 정비한 것은 실용적으로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는 김상헌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가마니 뺏기나 300명이 몰살되는 씬은 다른 고위관료들과 김상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어준다. 이는 최명길처럼 김상헌도 고립된 인물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서날쇠와 관련된 비극들은 김상헌과 조선왕조 전체를 대립하게 만든다. 이는 메인 줄기에 전혀 복무하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두 인물의 갈등을 건조하게 보여주다가 김상헌의 자기부정을 통해 느닷없이 조선왕조를 부정해 버린다. 김상헌의 자살과 인조의 대가리박아는 자연스레 체제의 종말을 연상시킨다. 그럼 이 영화는 목적이 무엇인가? 김-최-인조를 중심으로 그냥 전쟁을 보여주는 것(배경-상황 중심)? 아니면 전쟁을 배경삼아 세 등장인물의 역경을 보여주는 것(인물중심)? 최종 결론은 그 둘도 아닌 역사에 대한 훈계다. 좋은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허트 로커>는 주인공 중사의 광기를 관찰자 하사의 입장에서 계속 보여주다가, 관찰 종료 후에도 중사의 광기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이 전쟁의 광기를 목도하고, 자연스레 현실에 대해 비판적 감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굳이 김상헌의 입과 칼을 빌려 영화 본인이 나서서 비판을 한다. 핵심 주인공인 최명길과 인조는 여기서 아무 의미가 없다. 외국인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고 한국사람 보자는 건데 굳이 그런 수를 써야 했나 싶다.

-----------------스포일러!-----------------

적어도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은 없다. 배우들 연기력은 훌륭하고 파란 톤의 영상미도 좋고, 논쟁에 쓰이는 대사들도 무가치하게 낭비되지 않는다. 감상 자체의 즐거움에 나 역시 영화의 큰 줄기가 뒤바뀌는걸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논쟁 자체가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유머도 양념 역할을 톡톡이 한다. 게다가 논쟁 끝에는 대개 한바탕 피바람 전투씬이 예약되어 있으므로 지루할 새가 없었다. 뭐가 지루했다는건지.. 솔직히 한국에서 정말 이해가 안가는게 타란티노의 <바스터즈>가 이상하도록 인기가 좋은 건데, 외국어 실력이 일천한 본인으로서는 <바스터즈>의 아가리파이팅에서 재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한국인들의 외국어 실력이 그렇게 좋았다고? 최소 <남한산성>의 아가리파이팅은 역사적 맥락을 아니 즐길 수는 있지 않은가.

+ 이 영화에서 젤 인상깊던거는 인조 눈빛연기. 도살장 끌려가는 소눈깔ㅅㅂㅋㅋㅋ

+ 또 특징적이었던게 한겨울 산하를 담은 장면들. 한밤중에 고속도로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한국 산하의 스산함을 창백한 파란 톤으로 잘 담은 것 같다.

+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짜증났던 건 그놈의 1장, 2장 나누기와 축축 늘어지는 엔딩(한국영화 특유 고질병)

+ 만약 외국인들이라면 이 영화에 대해 어떤 감상을 할지 궁금하다. 그들은 한국사에 대해서 잘 모르며 그들의 명예는 신을 향한 것이지 황제 따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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